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와 옛 왕도 똘레도

2019. 12. 22. 21:26여행기

    유럽의 서남단에 위치한 이베리아반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자리하고 있고 이곳과 불과 14km거리인 지브롤터해협의 건너편에는 아프리카대륙의 모로코가 있다. 이들 3개국을 여행하고자 대한항공 편으로 13시간의 비행 끝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하였다.

 

    이슬람과 가톨릭이 한 데 어우러져 이색적인 문화를 창조하였고 플라멩코의 화려한 춤사위와 터질 듯한 투우의 격정을 머금고 있는 자유와 열정이 가득한 나라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한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인구는 400만 명이다.

 

    여행의 시작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부터 시작했다. 이 광장은 스페인의 각지로 통하는 9개의 도로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고 하며 대표적인 약속과 만남의 장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로 분비고 있었다. 근처에는 수세기 동안 스페인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온 마요르 광장이 있는데 1619년 이 광장을 만든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서있고 주변에 있는 역사적인 건물들은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스페인의 순수회화작품들로만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프라도미술관에는 많은 관객들이 붐볐다. 특히 2층 고야의 작품들은 인기가 많았는데 고야의 <나체의 마야><옷 입은 마야>의 사연은 우리를 흥미롭게 하였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동상
아름다운 마드리드 왕궁
고야 작품 ‘나체의 마야

    스페인 광장에는 돈키호테 동상이 있다. 창과 방패를 들고 풍차로 돌진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돈키호테가 시종 산초 판자를 데리고 다니며 갖은 기이한 행각을 벌인다는 소설 돈키호테는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이 여전한가 보다. 세르반 테스가 감옥에서 자유를 억압당할 때 돈키호테를 떠올리면서 한없는 자유를 꿈꾸었으리라...

 

    스페인 광장과 연결된 그랑비아 거리는 가장 번화가라고 하며 여기에 있는 건물들은 고딕, 바로크 풍에서 아르누보까지 마치 다양한 건축물의 박람회장이었고, 곳곳에서 펼쳐지는 거리 예술가들의 자유와 열정이 가득한 표현 그리고 거리 악사들의 흥겨운 연주는 마치 마드리드의 역동적인 숨소리를 느끼는 것 같았다.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쯤 달려서 똘레도에 도착하였다. 똘레도는 1500년대까지 스페인의 수도로서 중남미 대륙으로의 진출을 주도한 본영이었다. 스페인 하면 중남미를 빼놓을 수 없다. 중남미에는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것을 빼고는 모든 나라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고, 여러 나라에서 스페인의 혼혈인 메스티죠 인종과 뮬라토 인종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15세기 스페인은 400년간 많은 군대를 진주시켜 원주민의 남자들을 학살하고, 여자들은 병영으로 공출하여 강제로 인종배합을 시킨 결과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이 있도록 토대를 만든 당시 스페인에는 이사벨이라는 여왕이 있었다. 당당하게 전면에 서서 스페인의 황금시대 서막을 열게 한 이사벨 여왕이 바로 이 똘레도를 수도로 하고 있었던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이었다.

 

    15세기 이베리아 반도에는 아라곤, 카스티야, 그라나다, 포르투갈 등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사벨은 그 중 카스티야의 공주였다. 당시 국왕이었던 이사벨의 이복오빠 엔리케 4세는 이사벨을 포르투갈의 왕과 결혼시키려 하였으나 이를 거역하고 그녀는 궁정을 탈출하여 바야돌리드로 잠적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제에게 알리며 결혼식을 거행하기 위해 급히 와달라는 전갈을 보낸다. 그들은 왕의 허락과 교황의 허가도 없이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는데 얼마 후 행운의 여신은 두 사람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사벨이 카스티야의 여왕이 되고 페르난도 역시 아라곤의 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결국 두 나라가 통일이 되어 정식으로 스페인 왕국이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나라가 힘을 합치게 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에 있는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사벨은 스페인왕국을 남편이 통치하도록 하였지만 카스티야 정권에 대해서는 남편이 간섭을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는 등 자신의 나라에 대한 사랑이 큰 여자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이사벨여왕을 알현하고 신대륙항해에 필요한 자금을 요청하였다. 당시 스페인은 이슬람과 10년 전쟁이 막 끝난 시기여서 국고가 비어있었고 더구나 남편 페르난도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사벨여왕은 요청을 쾌히 승낙하고 자신의 패물들을 콜럼버스에게 내주었고 콜럼버스는 이를 팔아서 배 3척을 마련하여 항해를 떠났다. 그리고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어 거대한 아메리카대륙이 스페인의 품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똘레도는 타호강이 도시의 3면을 에워싸고 흐르고 있어서 지형적으로 군사적인 요충지였고 이슬람과 가톨릭이 만나 또 하나의 이색적인 문화를 만들어낸 스페인 종교와 문화의 발상지였다. 로마시대부터 성채도시였던 똘레도는 마치 중세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린 도시 같았다.

 

    똘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그 지위에 걸맞는 장엄함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과 성당 외벽의 종교적 조각들은 보는 이를 숙연케 하는데 대성당을 짓는 공사 기간만도 26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는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본거지 그라나다를 함락시켰던 역사적인 장면들을 조각으로 기록해 놓아서 당시의 역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똘레도 구시가지 정문인 태양의 문과 유대인 시나고가 교회 그리고 산토 토메성당 등은 이슬람과 가톨릭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스페인 고유의 건축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이다. 똘레도는 도시 전체가 마치 천연의 미로처럼 생겼다. 어디를 둘러봐도 좁은 골목길이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어서 길을 잃기가 십상이었다. 중세도시의 체취를 음미하면서 미로처럼 얽혀있는 길들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거닐었던 똘레도에서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똘레도 대성당
똘레도 시가지 골목길
똘레도를 에워싼 타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