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공존하는 안달루시아 지방

2019. 12. 22. 21:40여행기

    마드리드를 출발한 버스는 남쪽으로 올리브 나무와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는 고원지대를 차 안에서 스페인 왕국과 무어인들의 전쟁영화 엘 시드를 감상하면서 6시간을 달려 꼬르도바에 도착하였다. 여기는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이 지방의 유명한 도시가 꼬르도바, 그라나다, 세비야 이다. 여기는 더운 지역이어서인지 각 도시마다 시내에는 노란 오렌지가 탐스럽게 달린 나무들이 즐비하다.

 

    스페인은 8세기에 아랍의 왕족인 아브드 알 라흐만이 스페인으로 피신하여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이후 무어인들이 오랫동안 지배를 하고 있었으나 11세기 들어 기독교도의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가 일어나면서 무어인들은 남쪽으로 밀려 똘레도에서 꼬르도바를 거쳐 그라나다에서 그라나다 왕국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15세기말에는 페르난도 2세왕과 이사벨 여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이슬람 세력 대신 기독교문화가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지방은 이슬람유적이 많고 또한 여러 민족이 교대로 지배한 관계로 그 문화와 전통이 혼합되어 독특한 풍속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꼬르도바는 8세기부터 회교도의 수도로 수백만 인구를 가진 유럽 최대 도시의 하 나였다고 하고 아직도 도시 곳곳에는 번창했던 당시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있 다. 그 중에도 가장 뛰어난 건축물이 단연 이슬람교 사원인 메스키타이다.

    메스키타는 꼬르도바에 도읍지를 정한 후 바로 짓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3차례나 증축되어 여러가지의 다른 건축양식이 혼합되었고 2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가 되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회교사원으로 스페인 이슬람교의 중심지였다. 16세기에는 기독교인이 국토를 수복한 후 메스키타의 중앙을 헐고 그곳에 성당을 지어 가톨릭과 이슬람교의 두 가지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

꼬르도바 원경
메스키타 내부 아치형 천정
메스키타 중앙에 세운 성당

    교회로 개조할 당시 왕이었던 까를로스 5세가 어디에도 없는 것을 부수고 어디에나 있는 것을 세웠다고 탄식하였던 이 건물은 지금은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스타일의 건축물이 되고 있다. 사원 안에는 화강암과 벽옥과 대리석으로 된 850여개의 원주가 천정을 받치고 있고 아치형의 천장은 백색과 적색의 돌로 껴 맞추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메스키타에서 북쪽으로 조금가면 유대인 마을과 꽃의 골목이 있다. 한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지만 굉장히 아름답다. 흰벽의 양쪽 건물에 예쁜 꽃들을 머리에 얹은 화분들이 가득 걸려있다.

 

    꼬르도바를 출발하여 올리브나무가 뒤덮인 드넓은 구릉지를 감상하면서 이 나무들을 누가 재배하는지 농가도 없는 도로를 남동쪽으로 2시간 반을 달리면 그라나다에 도착한다. 그라나다는 해발 3,482m의 최고봉을 가진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산맥의 기슭에 다로강과 헤닐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시내에는 이슬람 건축물을 비롯해 르네상스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건축물들이 산재되어 있어 그 독특한 역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구시가지 언덕에 있는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은 13세기에 무슬림들이 천국을 묘사하여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데 대단히 아름답고 어딘지 애잔한 느낌을 준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 요새, 벨라탑, 헤네랄리페 정원 등이 함께 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벽면의 아라베스크 문양
알함브라 궁전과 집시촌 언덕

    이 궁전은 이슬람 건축양식이 그렇듯이 밖은 아주 수수하지만 궁 안으로 들어가면 신비로운 기하학적 문양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섬세한 미적 감각에 한없이 빠져들게 하고 높은 천정은 신전이나 사원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어디서나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흐름을 보고 물소리를 들을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여기는 수많은 분수들이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연상케 하는 최고의 기타 연주곡인 알람브라의 추억의 본고장이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이 녹아 사시사철 물이 흐르기 때문에 알함브라 궁전의 온갖 분수도 가능 한 것이리라.

 

    카를로스 5세 궁전은 16세기에 세운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사각의 궁전 중앙에 원형의 뜰이 있고 이 뜰을 둘러싸고 2층의 회랑이 있다. 1층은 도리스 양식의 대리석 기둥이고, 2층은 이오니아 양식이다. 뜰에서는 옛날에 투우를 했다고 하고 중앙에서 박수를 치면 뜰 전체에 메아리치는 이곳에서는 음악회도 열린다고 한다.

 

    이 궁전을 지켰던 알카사바 요새의 유적을 따라 좁은 계단을 계속 오르면 벨라탑 정상에 오른다. 뒤쪽의 시에라 네바다산맥의 봉우리들과 그라나다의 비옥한 들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술탄들의 여름 별궁이었던 헤네랄리페 정원에서는 정원수가 담벽 같았고 온갖 꽃들이 피어 있어서 황홀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시 그라나다를 출발하여 서쪽으로 약 4시간을 달리면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인 세비야에 도착한다. 세비야는 내륙에 있지만 수량이 많은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어서 항구도시이다. 이곳은 5세기 말에서부터 무슬림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의 수도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던 곳이었고 가극 <카르멘><세빌야의 이발사>로 온 세계에 알려진 곳이다.

    세비야에서는 거리의 어느 방향에서나 거대한 세비아 대성당을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중세 고딕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로마의 바티칸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과 더불어 유럽의 3대 성당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곳은 이슬람 시대에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기독교인들이 이를 부수고 성당을 지은 것이다. 크기가 명동 성당의 11배가 되는 이 거대한 규모의 대성당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세비야 대성당
스페인 광장
플라멩코 공연

    세비야 대성당의 내부에는 네 명의 스페인 왕들이 콜럼버스의 관을 받치고 있는 조각상이 있다. 고개를 쳐들고 봐야 하는 큰 규모와 예술성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콜럼버스가 스페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세계사의 중심을 유럽으로 뒤바꾼 역사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것 같았다. 콜럼버스는 세비야 항구를 떠나 신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으며 사망한 뒤 그의 유해는 이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돼 있다고 한다.

 

    또한 시내에서는 스페인에 남아있는 가장 완벽한 이슬람 양식의 19층 높이의 탑을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는 나선형의 복도가 있는 히랄다 탑과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세비야 왕궁인 알카사르 그리고 스페인 58개 도시의 역사와 사건을 아름다운 남색 그림의 타일로 꾸민 스페인 광장을 둘러보았고 유대인의 거리인 산타쿠르스거리에서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작곡한 롯시니의 집도 만나고, 스페인 최고의 카사노바인 돈 쥬앙의 집도 만날 수 있었다.

 

    세비야는 플라멩코의 본고장이다. 관람료가 1인당 70유로(11만원)로 비싼 편이지만 어떻게 플라멩코를 빼놓을 수가 있었겠는가? 플라멩코는 오감을 압도하는 너무나도 화려한 춤이다. 기다란 치마를 훽훽 돌리다가 중간중간 한쪽 다리로 치마를 걷어 올리며 섹시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기타 선율, 노래 가락, 손뼉 소리, 발 구르는 소리는 너무도 강렬해서 보는 이의 심장 박동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몹시도 슬픈 얼굴, 시시각각 변해 오는 무희의 표정도 압권이다. 관중들도 흥에 겨워 올레’ ‘빠사’ ‘발레등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이 강렬하고도 슬픔의 정서가 묻어난 춤은 15세기 후반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한 집시들의 슬픔과 정복당한 무슬림의 한이 안달루시아 전통 춤과 뒤섞여 현재의 플라멩코와 같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