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멈추는 이상향 샹그릴라(香格里拉)

2019. 12. 21. 21:36여행기

    여강을 출발한 버스는 차츰 산길을 달리게 되는데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주위는 구릉지대와 분지로 변하고 분지의 초원에는 염소, 야크(), 돼지 등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들이 이어진다. 2시간쯤 달리면 장강(양자강)의 첫 번째 협곡이 시작되는 곳에 산을 휘감고 흘러가는 장강제일만이 펼쳐져 있고 다시 장강(長江)의 상류인 금사강(金沙江)의 우유 빛 물살이 급류로 흐르고 있는 이곳의 아찔한 산 능선을 1시간쯤 더 달리면 옥룡설산(玉龍雪山)과 합파설산(哈巴雪山)이 맞닿은 곳에 세계에서 가장 좁고 가장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는 호도협(虎跳峽)에 도착한다. 산 정상과 계곡의 높이 차이가 3,900m나 된다고 한다.

 

    도로에서 급경사인 계단을 한참 내려가면 30m인 강폭의 한가운데에 급물살을 버티고 누워있는 큰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곳으로 호랑이가 뛰어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도협을 구경하고 다시 고원을 2시간쯤 더 달리면 샹그릴라(香格里拉)에 도착한다.

옥룡설산
금사강과 차마고도
호도협

    원래 이름이 중전(中甸쭝디엔)이었던 샹그릴라는 운남성 북서부 장족(藏族티베트족)자치주에 있는 해발 3,300m인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강(양자강)의 물줄기를 형성하는 3개의 지류가 하나로 합쳐지는 강과 협곡으로 이뤄진 곳에 있으며 현재 인구는 12만여 명으로 장족(티베트족)75%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샹그릴라라는 단어는 장족의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의 티베트어인데 1933년 영국 작가인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처음 등장하면서 이상향이라는 의미의 영어로도 채택하게 되었다. 힐튼은 이곳 샹그릴라에 실제로 와본 적은 없고 식물학자인 그의 친구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보낸 편지들을 근본으로 하여 소설이 쓰여 졌다고 하는데 당시 이 소설은 유럽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샹그릴라라는 곳은 평화가 느껴지는 공간이며 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사고로부터 떨어져서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 되어지고 있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찌든 서구인들에게 낙원의 꿈을 불러 일으켰으며 또한 1990년대에 들어서는 세기말 풍조가 일면서 사람들은 다시 인류의 이상향 샹그릴라를 떠올리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샹그릴라는 냉전시대에 외부 세계와 단절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사이 인도, 네팔, 부탄 등은 저마다 히말라야 산맥의 한 마을을 정해 샹그릴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에 자극 받은 중국 정부는 마침내 199650여명의 국내외 학자들로 구성된 샹그릴라 탐사대를 구성하였고, 운남성(윈난성), 사천성(쓰촨성), 티베트자치구 등을 샅샅이 조사하게 되었다. 힐튼의 소설에 나오는 설산과 대초원, 강과 협곡, 원시 산림, 다양한 동식물, 티베트 종교 등이 그 기준이었다. 이들은 중전현이 소설의 무대와 똑같다는 결론을 내려서 중국정부는 2002년초 중전현(中甸縣)의 행정명칭을 샹그릴라현(香格里拉縣)으로 바꾸게 되었고 현재 중전이라는 명칭은 자그마한 한 마을 이름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잠시 샹그릴라를 상상할 수 있는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줄거리를 요약해 본다. <1931년 인도의 바스쿨이라는 곳에서 식민 통치하던 영국에 대항하여 일련의 폭동이 일어난다. 이 폭동을 피하기 위하여 우연히 만난 네 명의 외국인은 인도주재 영국영사 콘웨이, 부영사 맬린슨 대위, 미국인 바너드, 그리고 동방정교 여전도사인 브린클로였다.

 

    이들은 소형 비행기를 타고 피난을 가게 되는데, 비행기는 원래의 목적지인 페샤와르를 벗어나 엉뚱하게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항로를 벗어난 것을 알게된 조종사는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비행기는 결국 티베트 변경인 중국 국경의 곤륜산맥 부근에서 연료가 바닥나 산 위에 불시착하게 된다.

 

    조종사는 사망하고 얼어버릴 듯한 추위와 고산증으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던 이들은 뜻밖에도 일단의 현지인들에 의해 샹그릴라로 안내된다. 세상과는 완전히 고립되어 외지인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지역에 위치한 샹그릴라의 라마교 사원에 인도된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푸른달 골짜기라 불리는 이곳에 대하여 더 알 수 없는 수수께끼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푸른달 골짜기’ 야딩
샹그릴라현
산간 마을

    달 밝은 어느 날 밤 콘웨이는 샹그릴라의 지도자인 승정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승정 자신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2백년이 넘었고 비행기가 이곳에 불시착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후계자를 만들기 위하여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으며,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나이는 실제 보기보다 수 십 년씩 많은데 이곳을 벗어나면 즉시 원래의 나이로 되돌아간다고 하면서 이곳에서 안주하는 한 적어도 2백년 이상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정은 후계자로 콘웨이를 지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콘웨이가 이를 수락하자 승정은 250세로 숨을 거두었고 콘웨이는 이 엄청난 비밀을 어떻게 일행에게 알려야 할지 고심한다. 한편 샹그릴라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던 청년 맬린슨은 혼자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다시 돌아와 콘웨이에게 같이 떠날 것을 애원한다. 콘웨이는 샹그릴라의 뿌리칠 수 없는 마력과 맬린슨이라는 인간의 정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맬린슨과 함께 길을 떠난다.

 

    샹그릴라를 벗어난 어느 지역에 도달한 콘웨이는 샹그릴라에서 같이 기거하던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만주 여인 로첸이 맬린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들은 함께 이곳을 떠나게 되었으나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 몸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콘웨이가 기억을 더듬어 그의 친구 러더퍼드에게 들려준 체험담이다.

 

    얼마가 지난 후 친구 러더퍼드는 다시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게 되었고 당시 이들을 치료했던 의사를 어렵게 만난다. 맬린슨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와 로첸으로 보이는 아주 굉장히 나이 많은 노파가 함께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그 노파는 열병으로 곧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편 콘웨이는 중국의 병원에서 종적을 감췄고 다시 동남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소문만 있을 뿐 그 이후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러더퍼드는 그가 다시 샹그릴라의 이상향에 무사히 안착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야 했다.>

 

    샹그릴라 근교의 초원에서는 한가로이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농가의 지붕은 나무기와인데 그 위에 돌이 올려져 있었고, 들판에는 집집마다 지게 모양의 커다란 건초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이색적이었다. 멀리 설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운남성에서 티베트로 차를 실어 보내는 차마고도’(茶馬古道)가 통과하고 있는 곳이다. 설산은 해발 6,000가 넘는 봉우리가 13개나 되고 4,000가 넘는 고봉만도 470여개나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수백리나 펼쳐져 있는 웅장한 설산군락을 이루고 있고 가장 높은 봉우리는 매리설산(梅里雪山)의 해발 6,740인 카와거버봉인데 태자설산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라마교의 성지라고 한다.

납파해
속도호
벽탑해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30분쯤 버스를 타고가면 자연보호구로 지정이 된 납파해(納帕海나파하이, 해발 3,260m)가 있다. 보기에 아주 넓은 평야지대로 보이는데 분지가 되어 우기에는 호수가 되고 건기에는 초원이 되어 갖가지 들꽃이 피고 가을에는 수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경치가 변한다는 이곳의 초원을 조랑말을 타고 둘러볼 수 있었다.

 

    또 시내에서 동쪽으로 1시간정도 달리면 보달조국가공원(普達措國家公園)이 있다. 이 공원에서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어서 이 버스를 타고 속도호(屬都湖슈두후)와 벽답해(碧塔海비타하이)까지 갈 수 있었다. 두 호수는 해발이 3,5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청정호수로 물이 맑고 규모가 대단히 크다. 특히 벽탑해는 옥색 빛깔의 넓은 호수로 여러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호수의 중심에는 숲으로 된 조그만 섬이 하나 떠 있어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한다. 산에는 이 호수를 둘러볼 수 있는 관광순환도로가 있는데 해발이 4,200m나 된다. 셔틀버스를 타고 아름다운 벽탑해를 내려보며 감상할 수 있었으며 길 주변에는 많은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어 마치 목장 같은 경관을 볼 수 있었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의 이상향 푸른달 골짜기는 사천성 쪽에 있는 지금의 야딩(亞丁)이라고 한다. 야딩은 샹그릴라 지역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장소로서 삼각형의 장엄한 설산이 놓여 있는 곳이다. 야딩에는 신비스러운 티베트 풍의 사원이 있으며, 척박한 티베트의 본토와는 달리 풍요로운 밭과 삼림과 푸른 들이 있어 살기 좋은 환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샹그릴라현에서 야딩까지는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서 조랑말을 타고 해발 5천미터의 차마고도와 같은 오솔길을 3일 정도 걸려야 가는 곳이라고 하여 야딩이 있는 설산 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샹그릴라 주변에는 티베트의 유적지도 많은데 그 대표적인 곳이 대형 불전인 송찬림사(松贊林寺쑹찬린스)이다. 이곳은 운남성 서장불교의 최고사원으로 1,600여명의 스님이 한꺼번에 불경을 읽는 작은 포탈라궁이라고도 부르는 사원인데 운남성과 사천성을 통틀어 최대의 라마교(黃敎)사원이라고 한다.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 참배할 수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장족(藏族)은 원래 유목민족이고 목욕을 평생 세 번 한다고 한다. 태어날 때와 결혼할 때 그리고 죽은 뒤, 그러니까 자기 손으로는 결혼할 때 한번만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목욕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 같다. 또 여기에는 기이한 결혼풍습이 남아 있다. 한 집안의 큰형이 장가가는 날은 동생들도 같이 장가가는 날이다. 그러니까 한 명의 여자를 공동의 아내로 삼는 풍습으로 애들의 아버지는 맏형이 되며 동생들은 리로이(삼촌)’로만 부르게 한다고 한다. 이 장족은 티베트불교 문화권에 있기 때문에 정중하고 친절하며, 장족이 일으킨 의학은 1,6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돌아본 샹그릴라 일대는 해발이 높아서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숨이 차는 고산증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다. 우리 일행들은 곤명(1,891m), 대리(1,976m), 여강(2,416m)을 거쳐 샹그릴라(3,300m)에 오는 동안 고도를 높이는 육로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차츰 고산지역에 적응이 되어 가벼운 증세 외에는 심한 고산증 없이 건강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항공편으로 이곳을 오는 경우는 샹그릴라공항의 해발이 3,700m이어서 갑작스러운 기압변화로 고산증세인 두통과 메스꺼움 등으로 상당한 고생을 감수할 수도 있다. 외지인들은 이러한 고생을 하는 곳이지만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무병장수하는 그런 고장이다. 샹그릴라는 그러한 곳이다.

송찬림사
샹그릴라고성
장족 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