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고도 페스

2019. 12. 25. 20:20여행기

    탕헤르를 출발한 버스는 5시간을 달려 모로코에서 세 번째로 큰 옛 수도인 천년고도 페스에 도착하였다. 페스는 단지 모로코의 옛 수도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 모로코인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한다. 8세기에 건설된 이래 모로코의 지배자들이 바뀔 때마다 페스 시민들의 충성서약을 받아야만 안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민심의 척도가 되어 왔고, 식민지배로부터의 저항과 독립운동도 페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도시인만큼 모로코 사람들에게 모로코에서 꼭 가 봐야할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페스라고 말한다고 한다.

 

    페스에는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건설한 도시 신시가지와 옛 도시인 구시가지로 나뉜다. 보통 페스라고 하면 구시가지를 의미하는데 구시가지를 일컫는 메디나는 자그마치 7,900여개의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어 미로처럼 얽혀있고 사람 두세 명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좁아서 차는 다닐 수가 없고 당나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현재 메디나에는 100만 명이 살고 있으면서도 거의 1,200년 전의 이슬람 왕조시대의 건물과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골목길에는 먹거리 시장은 물론 구리세공방, 구두공방, 베틀집, 대장간, 가죽제품공장 등 간판도 없는 수많은 공방들이 있고 공방들은 좁은 공간인데도 서너 명씩 모여 앉아 땀을 흘리면서 일에 여념이 없었다.

 

페스 메디나의 골목길

    모든 것을 사람의 손으로 해결하고 있는 이곳 메디나는 지금도 중세 이전의 도시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삶의 현장 그대로였다.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시간여행을 떠나 온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서 모든 것들이 신기하였고 한참을 걷다 보면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미로 속에 빠진다.

 

    좁은 골목 안에도 광장이 있고 무슬림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모스크이자 대학인 카라윈 사원이 있다. 22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니 규모가 대단하다. 이슬람이 처음 생겨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지만 이곳 카라윈 모스크에서 발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12년 동안 코란을 비롯하여 수학, 철학 등을 배워서 종교 지도자로 양성되었고 세계 각지로 나가 이슬람을 전파하는 전교자가 되었다고 한다.

 

    가죽을 등에 지고 가는 당나귀를 따라가면 만나는 곳이 가죽 무두질공장인 탄네리이다. 메디나의 중심부에 있는 탄네리에서는 거대한 팔레트처럼 땅에다 만든 형형색색의 염료 통 속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쉴 새 없이 생가죽을 적시고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유일의 가죽 공장이라고 한다.

 

가죽 무두질 공장 ‘탄네리’

    이 공장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가죽제품을 파는 점포의 2층으로 올라갈 때에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코에 대라고 박하냄새가 나는 풀 가지 하나씩을 나눠준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냄새를 참기가 힘든데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니 경건한 마음마저 들게 하였다.

 

    시가지는 8세기 이후 성냥갑 같은 작은 집들이 저절로 미로와 같은 골목을 만들어 왔다고 하는데 주택들의 구조는 집들이 다른 집들과 계속 연결이 되어 있고 한쪽 면에만 작은 창문이 있어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찬란했던 중세문명이 세월과 함께 쌓여 왔고 곳곳에 이슬람 특유의 문화로 채우고 있는 비좁고 불편한 이곳에서 옛 모습 그대로 생을 이어가고 있는 메디나를 마음속에 그려보고 있으니 현지 가이드였던 랄루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두 사람이 겨우 비껴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당나귀와 마주치면 유창한? 한국말로 당나귀라고 소리 지르고 배설물이 있으면 당나귀 똔이라고 외쳐대어 우리를 즐겁게 하였던 그 특유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