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을 타고

2019. 12. 26. 10:05수필

    경춘선이 개통되면서부터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마침 남편 친구모임에서 여섯 집이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가을빛이 한창이어서 야외로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던 참에 춘천을 가게 되어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어린 아이처럼 잠을 설치고 상봉역에 도착하였다. 석탄차로, 디젤로, 71년간 달렸던 경춘선이 고속전철로 개통되면서 날로 관광객이 늘어 가고 있다고 한다. 탑승하여 수분 후 망우역을 거쳐 일곱 번째 호평역에 도착하였다. 북한강 물을 심야전기로 호명산에 끌어올려 수력 발전을 일으키는 호명호가 있어 등산객이 많이 찾는 경치 좋은 곳이라 한다. 다시 마석을 지나 MT장소로 유명한 대성리를 거쳐, 청평에서 잣의 고장 가평에 이르자 평화로운 전원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였다. 단풍과 어우러져 더욱 물빛이 고운 북한강이 스쳐 지나가자 모두 함성을 질렀다. 또 다시 MT 장소인 강촌에 이르니 우리 가족이 등선 폭포에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 다음은 김유정역으로, 일제 강점기 때 23세의 나이로 귀향하여 계몽운동을 했고, 서정적인 단편 소설을 썼던 곳으로 기념관이 있어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일행 중 한 분이 알려 주었다. 다음 남춘천역을 지나 드디어 춘천역에 도착하였다. 일반 전철을 타서 79분에 온 셈이다. 급행을 타면 63분에 올 수 있다고 한다.

 

    미리 예약해 놓은 음식점 봉고차에 가득 타고 고즈넉한 시골 길을 10km 쯤 달려가 내리니 산뜻한 공기가 가슴 속까지 확 스며들었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밭을 일군 강원도 특유의 산촌 들에 음식점이 있었다. 호반의 도시 춘천은 무엇보다도 닭갈비와 막국수가 이름 나 있다. 벙커 같은 간이 음식점에 들어서니 구수한 냄새가 그득하여 군침이 돌았다. 돌판 구이 식탁에 앉으니 야채 섞인 닭갈비를 한 양푼 갖다 수북이 올려놓았다. 여자 여섯이 먹기에 많은 양이다 싶었는데, 익기 시작하자 양이 푹 줄어들었다. 고추장 양념을 뒤집어쓴 양배추, 고구마, 가지와 가래떡이 고기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달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입 안이 얼얼할 즈음,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만 막국수를 먹으니 쫄깃하고 새콤달콤한 맛에 눈까지 밝아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볶아주는 밥은 배부른데도 맛이 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다시 그 차에 올라 주변 경관을 둘러보았다. 춘천에는 이색 문화예술 시설로 인형극장, 에니메이션 박물관, 드라마 갤러리, 그리고 막국수 체험 박물관 등이 있다고 한다. 의암호수 부근의 에니메이션 박물관에 갔지만 모두 박물관에는 들어갈 생각도 않고, 넓은 잔디밭 벤취에 앉아 멍하니 호수만 바라보다가 가자고 하지 않는가! 만약 손자들과 왔다면 들어가자고 하지 않아도 박물관 관람을 먼저 하였을 것이다.

소양강처녀 노래비와 처녀상 앞에서

    소양강과 이어진 의암호에 소양강 처녀상을 우람하게 세워 놓았다. 통통하고 복스러운 몸집의 처녀상은 치마를 무릎 위로 살짝 올리고 강바람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날리며 서 있었다. ‘소양강 처녀노래비 앞에는 버튼만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치가 있어 모두 흥겹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의암땜도 구경하고 은행잎이 누렇게 수북히 쌓인 나무 아래서 사진도 찍었다. 안타깝게도 김유정 마을에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가보지 못한 곳을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경로우대증이 있어 점심밥값 만으로 춘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돌아본 셈이니 하루 여행코스로는 이만한 데가 없다고 생각된다. 외국 여행을 수없이 해봐도 우리나라 같이 오밀조밀하고 한식 맛 같이 감칠맛 나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급부상하는 K팝과 함께 한국의 멋진 자연경관도 세계에 알려졌으면 한다. 다행히 제주도가 세계7대 자연경관으로 뽑혀 기쁘기 그지없다.

 

    단선으로 71년간 숱한 추억을 안고 달렸던 경춘선이 이제는 복선 전철로 수많은 관광객을 실어 나르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쌓아갈 것이다. 앞으로 시속 180km의 고속열차가 개통되면 주행시간이 40분으로 단축되어 춘천은 더욱 멋진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노래도 있고 인생을 소풍으로 표현한 시인도 있다. 인생은 목적은 있되 끝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 그러나 소풍은 목적지가 정해져 있어 끝을 보게 되니 편안하다. 삶이 소풍가듯 즐겁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소풍이,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뿌듯함으로 끝나듯 인생도 그리되면 좋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숱하게 마음 아파했다. 이제부터는 작은 일에도 의미를 찾으며,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소풍하듯 살아 보련다. 오늘 소풍으로 나의 하루가 귀한 선물이 되었다.

 

- 온경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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