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국수기계

2019. 9. 25. 09:11수필

                                                       

살림을 하다 보면 버렸던 물건이 가끔 아쉬워질 때가 있다. 버리지 않았더라면 요긴하게 쓸 걸 그랬다고 간절해하면서 옛 노인들을 닮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놀란다. 시어머님이 물려주신 미싱도 필요 없을 거라고 버렸다. 이불 홑청이나 조금만 박아도 될 옷도 수선 집으로 들고 가야할 때는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골동품으로 가치가 있을 시어머니 혼수, 백동장도 생각 없이 버렸다. 눈만 흘겨도 부서질 듯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였다. 난간이 있어 고풍스러웠던 평상은 대학에 기증하기도 했다.

가끔 칼국수를 해 먹으면서 힘이 들 때면, 남편은 버린 국수기계를 아쉬워했다. 방망이로 힘들여 미는 모습을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일반 주택의 잡동사니와 함께 미련 없이 버린 물건이다. 자주 쓰지 않으면 녹이 스는 기계다. 밀가루 반죽을 여러 번 밀어 넣고 돌려서 닦아내야만 쓸 수 있어 꺼림칙하지만, 남편은 이 기계로 뺀 국수가 더 맛있다고 했다. 식구들과 어울려 별식을 해 먹던 추억이 서린 물건인데, 그 편리한 기계를 버리고 시원한 생각까지 했으니, 이 얼마나 무심한 아낙인가. 남편의 추억까지 버린 셈이 아닌가. 청결이라면 둘 째 가기를 서러워하는 내가 잘 간수하며 쓸 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국수 기계

남편은, 어머님과 함께 국수를 뺄 때면 신이 나서 부산을 떨었다. 책상 가장자리에 기계를 끼워 조여 놓고, 반죽도 대강 버무려 손쉽게 국수를 뺐다. 멸치 국물이 우러나면 국수를 넣어 익힌 후 애호박 채친 것과 파, 마늘을 넣고 한소끔 끓여 간을 하면 되었다. 잘 익은 고추장을 살짝 섞어 먹으면 일품이었다. 고추장 특유의 향긋한 맛과 호박의 달짝지근한 맛이 기막히게 혀를 자극하였다. 씹을 것도 없이 훌훌 잘도 넘어갔다. 깔깔한 보리밥만 먹던 때였다, 남편이 언젠가 국수 맛이 좋아 세 그릇이나 먹고 드러누워 괴로워하며 나 건들지 마! 배 터져하는 바람에 식구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큰아들을 제일로 여겼던 어머님이시기에 그 무거운 쇳덩이를 우리 집에 갖다 두셨으리라.

남편이 살았던 집은 아름드리 기둥으로 지어져 대궐 같았다고 한다. 뒷동산 대나무 숲에는 꿩 새끼들이 뛰어놀고 죽순이 지천으로 돋아났다고 한다. 그 집은 헐려 어느 절간의 재목이 되었다고 한다. 하필이면 절집이 되어 더욱 외로웠을 옛집이다. 어머님은 가끔 대청 선반에 크기순으로 장식해놓았던 같은 모양의 파란 목단무늬 백자 항아리 셋트 30여개를 팔아 쓴 걸 한탄하셨다. “갖고 있었으면 큰 돈 될 텐데하며 아까워하셨다. 어머님은 물건을 허투루 버리지 않으셨다. 오래 사셨더라면 아무것도 버리지 않으셔서 불만도 있었겠지만 필요해져서 쓰게 될 때는 고마워했을 것이다. 병으로 고생하시는 아버님 대신 가족을 이끌어 가시느라 지쳐 회갑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이 크셨겠지만 자식들 교육만은 남보란 듯 시키셨으니 어머님이 존경스럽다. 시부모님 산소에 갈 때는 남편이 알려 준 옛집 터를 그의 마음으로 바라보곤 한다. 남편은 그 집을 그려 두고 싶다고 했다. 내가 그림을 좀 배웠다고 그려 보라고 했지만 아직 그리지 않고 있다. 못 그려도 본인이 추억을 더듬으며 요모조모 그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그 집에서 어머님과 6남매가 국수기계를 가운데 놓고 한데 어울려 소란을 피우며 국수를 해 먹는 정겨운 모습이 본 듯 선하다.

남편이 칼국수를 먹고 싶어 하면 짜증부터 내던 내가 요즘에는 내가 먼저 칼국수를 해 먹자고 한다. 팔이 혹사당하는 일이라서 남편은 미안해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니 반죽도 귓밥처럼 말랑말랑하게 잘 된다. 삶의 매듭은 마음먹기에 따라 풀린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자동 국수기계를 하나 사고 싶지만 두 사람 먹자고 사기도 그렇고, 오순도순 만들어 먹는 것이 더 좋을 듯하여 그만두었다.

이제 살림을 치워야 할 때다. 그리 좋은 살림도 없어 남겨줄만한 물건도 없는 것 같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덩그러니 남겨진 고리짝을 열어 보았다. 차곡차곡 쌓인 광목 버선과 누런 명주, 은방울 한 쌍, 그리고 모시 옷감이 전부였다. 막내 혼수로 쓰실 요량이신 듯했다. 혼숫감으로 쓸 수 없을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도 없이 걸레, 행주, 그리고 아기 강보로 뜯어 써 버렸다. 내 며느리인들 다를 것이 있겠는가. 짐이 되지 않게 하나 둘 버려야겠다. 장식장을 보니 해외여행에서 사 온 기념품과 양주병이 즐비하다. 자식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갖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주어도 갖고 있다 버릴 것 같다. 누구는 패물을 준다는데, 금붙이도 남은 게 별로 없다. 짧은 진주 목걸이하나가 쓸 만하나 젊은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밍크 코트를 준다한들 유행이 지나 시들할 것이다. 딱 하나 로렉스 손목시계를 주면 좋아할 것인가. 딸과 며느리가 사 준 명품 가방도 있으니 동생들에게 주어 볼까. 살아있을 때 나누어 주어야한다고들 한다. 남편과 매번 정리하자고 하면서도 과감히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니 미련을 두면 안 될 일이다.

인생이 4계절 같다고 한다. 삶이 하루의 흐름 같기도 하다. 새가 나무에 잠깐 머무는 순간을 인생이라는 사람도 있다. 하루해가 하늘을 곱게 물들이며 지고 있다. 마지막이 이렇게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 아닌가 싶다. 되돌아볼수록 반성할 일들이 많아서이다. 버린 국수기계를 떠올리며 따뜻한 가족애를 배운다.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을 남겨 주는 것도 좋지만 살아서 베푼 사랑만큼 큰 유산은 없으리라.

 

- 온경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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